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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친구는 내가 콜롬보 기차역에 갈 때 바래다주었다. 미리 예약한 표를 일정상 환불받아야 할 때에도 도와줘서 여권 사본 복사 등을 손쉽게 할 수 있었다. 고마워서 나중에 또 보자는 이야기를 하며 왓츠앱 번호를 교환했다. 이 친구처럼 따뜻하고 친절한 스리랑카 친구들을 만나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렇게 이 친구와 헤어지고, 콜롬보 역내로 들어갔다.

낡고 약간은 어두우면서도 그 안에 싱그럽게 움직이며 바삐 돌아다니는 많은 행인들이 보였다. 역 개찰구 옆에 작은 의자에 앉아있던 할아버지가 보더니 티켓을 내놓으란다. 온라인 티켓 예매서를 보여줬더니 따라오란다. 사실 어디서 타야 하는지 아무 곳에도 설명이 없어서 이 할아버지를 따라갈 수밖에 없었다. 5번 출구로 가서 타라며 나를 안내해 주셨다. 5번 출구로 가는 통로가 어디 있나 봤더니 그런 거 없음.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약간은 건널목스럽게 생긴 철길을 건너 다녔다. 마치 내가 아주 어렸을 적 8 ~ 9살이던 시절에 할머니 집 근처에 있던 기차역 철길 같았다. 철길 한쪽에는 사람들이 부지런히 무언가를 옮기고 보수공사를 하고 있었는데 장비라고는 두 손과 포대자루, 그리고 삽 몇 자루가 다였던 것 같다. 그리고, 많은 행인들은 저마다 분주하면서도 동시에 여유 있고 느긋하게 기차를 기다렸다. 앉는 곳이 있어서 나도 얼른 가서 자리 잡고 짐을 내려놓았다. 내 앞자리에는 어떤 스리랑카 아주머니가 아주 빠른 속도로 전화를 하고 있었다. 그리고 왼쪽 편에 있던 아주머니는 날 보더니 미소를 지으셨다. 눈이 마주치는 스리랑카인들은 내가 그들에게 미소를 주거나 "아유보완" 하면 밝고 순수한 미소를 지어주며 같이 인사해 주었다.
조금 기다리니 열차가 왔다. 서둘러 가방 두 개를 앞, 뒤로 메고 탔다. 그런데 타면서 뭔가 이상했다. 약간… 이건 지하철 같은데 싶었다. 왜 기차느낌이 이상하지 싶어서 같이 탄 중국인에게 물어봤더니 영어를 못하고 중국어로 말하다가 번역앱을 켜는 것 같았다. 난 지금 당장 빨리 내릴지 말지 결정해야 하는데 기다릴 시간이 없을 것 같아서 직장인으로 보이는 스리랑카인에게 온라인 티켓을 보여주면서 “갈레 ? 갈레?” 그랬다. 그랬더니 스리랑카인이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라고 이 차 타면 안 된다고 하는 것 같은 뉘앙스로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모르겠다 일단 내리자 하고, (차 문이 닫히지 않았는데 기차는 출발하고 있었다) 확 뛰어내렸다.
나 때문인가, 가던 기차가 다시 정차했다. 쭈뼛거리며 어떡하지 하고 있는데 의자에 앉아있던 한 아주머니가 나한테 이리 오란다. 갔더니 너무 위험하니까 다시는 그렇게 뛰어내리지 말라고 하신다. 어디 가냐고 하시더라. 갈레에 간다고 했더니, 이 기차는 갈레에 안 간다고, 한참 뒤에 올 거란다. 한참뒤에? 온라인 티켓 종이를 보았다. 아뿔싸 2시 40분에 도착한다고 쓰여있네. 대충 봤더라니 어쩐지.. 지금은 2시였다. 하마터면 이상한 곳에 갈뻔해서 하루의 일정이 다 망가질 뻔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안도했다. 아주머니는 아주 친절하셨다. 일단 여기 앉으라고. 그러면서 기차가 오면 자기가 알려줄 거라고 하신다. 감사했다. 조금 기다리면서 GPT한테 스리랑카에 대해, 그리고 기차역에 대해 이것저것 물어보면서 시간을 때우고 있었다. 사람들의 얼굴과 표정, 그리고 다니는 모습들도 관찰하면서. 갑자기 어디선가 한 발을 저는 할아버지가 다가오더니 내 앞에 앉아있던 여자애들에게 돈을 달라고 손을 내민다. 저는 발을 봤더니 아주 크게 부어있었고, 당장 수술을 해도 이상하지 않을 정도로 상해있었다. 고름이 나는지 파리들이 발에 앉아이었다. 매우 아플 것 같아 보였다. 우리나라 지하철에서 불우이웃들이 돌아다녀도 최근에는 돈 한 푼 준 적 없던 내가 이곳에서는 왠지 착한 한국인 관광객 코스프레를 하고 싶었나 보다. 먹다가 너무 양이 많아서 조금 먹고 점심때 먹으려 했던 도시락을 드렸다. 돈은 못주고. 잘 받아갔다. 난 왠지 주변인들이 쳐다보는 것 같아 부끄럽기도 하여 핸드폰만 뚫어지게 보며 기차를 기다렸다.
저 멀리서 녹슬었지만 웅장하고 엔틱해보이는 기차가 거대하게 다가와 정차했다. 에어컨이 나오는 1등석(5천 원 조금 넘는 가격) 지정석에 앉았다. 외국 관광객들이 1등석에 앉는 것 같았고, 일부 스리랑카인들도 앉아이었다. 오른편에 앉았다. 조금 이어 기차가 출발하더니 갈레로 향했다. 서쪽 해변길을 따라 갈리는 갈레행 기차의 창문 밖 풍경은 가히 예술이었다. 파도가 다소 거칠게 치는 인도양의 바다는 야생적이었고, 파도가 철썩 칠 때 바닷물이 꼭 기차에 튈 것 같을 정도로 가까웠다. 사진과 영상에 이 풍경을 담고 또 담았다. 때로는 스리랑카인들이 사는 동네를 지나기도 하였는데 동네가 하나같이 다 너무나도 못살아 보였다. 판자촌으로 만들거나 흙으로 벽을 세우고, 앞마당에 빨래들을 널어놓고, 이것저것 잡다 구니 같은 것들이 곳곳에 쌓여있었다. 그 사이에서 거주민들은 때로는 맨발로, 거의 쪼리를 신고 다녔다. 희한했던 건 여성들의 옷차림이었다. 집의 모양은 너무나도 가난한 빈민의 모습이었으나 이 사람들의 걸음걸이와 행색은 초라해 보이지 않았다. 옷은 단정하면서도 피부톤과 잘 어울리는 색감이었다. 때로는 우아하고 드레시한 옷차림을, 때로는 깔끔한 비즈니스 복장을 입은 여성들이 지나다녀서 신기해하며 지켜보았다. 한편, 어떤 구간은 공사 중인 현장을 지나기도 하였고, 어떤 구간에는 리조트나 호텔이 꽉 들어차서 풍경이 전혀 보이지 않기도 했다. 거대해 보이는 저 리조트는 외국계열 회사들이 짓는 거겠지 싶어서 씁쓸해지기도 하였다. 지나친 스리랑카 사람들의 판자촌 집무덤들과 대조되는 것 같아서.

이런저런 생각을하다 보니금방 갈레에 도착하게 되었다. 방송 같은건 없다. 감 잡고 내려야 한다. 외국인들이 우르르 내리길래 따라 내렸다.갈레 기차역은 작고 아담했다. 내비앱을 켜고 숙소로 가기 위해 방향을 잡았다. 이 나라는 횡단보도가 최소한으로그려져 있다. 신호등도 물론이고. 갈레 포트방향으로 가는 도로변은 넓어서 신호등이 있었지만 호텔로 가는 방향은 없었기에 사람들 따라서 눈치껏 쫓아 건넜다. 호텔 앞에는 바로 버스터미널이 있어서 쉴 새 없이 버스들이 경적을 울리며 지나다녔다. 버스들의 위용이 압도적이었는데 미국 스쿨버스의 느낌으로 생긴 외관구조에 파란색, 빨간색 등으로 알록달록하게 페인트칠을 해놓았다. 호텔 주변에는 과일가게 노점, 핸드폰 등 전자기기 가판대, 빵이나 쿠키를 파는 작은 가판대 등이 널려있었고, 스리랑카 인들이 왕래하고 있었다. 이곳은 번화가구나. 호스텔 입구를 겨우 찾아서 들어간 후 체크인을 한 후에 가볍게 러닝을하고 싶어서 밖에 나왔다. 골 포트 성벽길을 둘러보고 싶었다. 컴컴하고 사람들은 없지만 불빛들이 여러 가게 상점에 걸려있어서 한 바퀴 가볍게 돌았다. 밤이라 그런지 몰라도 스리랑카 커플들이 많았다. 근데 어쩜 이렇게 조용들 한지. 떠들거나 시끄러운 사람들이 거의 없었다. 가게들은 텅텅 비었다.스리랑카인들은 거의 성벽 둘레길 근처에 있었다. 중간 중간에있는 아름다운 등대, 힌두템플, 멀리서 치는 밤 파도, 성벽 길 등이 아름다워서 사진에 담은 후 다시 호스텔까지 가볍게 러닝을하며 돌아왔다.
